호모데우스
AI와 생명공학이 인간의 미래와 본질을 어떻게 바꿀지 탐구한다.
사피엔스가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를 7만 년 스케일로 풀었다면, 이 후속작은 그 반대 방향을 향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라리는 과거 서술의 방법론을 미래에 적용해 향후 수십 년 안에 닥칠 변화를 예측합니다.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이라는 인류의 오래된 적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대체로 정복됐습니다. 지구상 더 많은 사람이 굶주림보다 과식으로, 전염병보다 노화로, 전쟁보다 자살로 죽습니다. 그래서 이제 인류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하라리의 답은 섬뜩합니다. 우리는 신이 되려 합니다.
이 책의 핵심 주장
21세기의 세 가지 메가 프로젝트
하라리가 예측하는 21세기의 거대 프로젝트는 세 가지입니다. 불멸(Immortality), 행복(Bliss), 신성(Divinity). 인류는 이제까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자연 현상으로 여겼지만, 21세기에는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주요 벤처가 노화 자체를 질병으로 보고 치료제 개발에 수십 억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행복은 과거에 철학자의 질문이었지만 이제 생화학의 문제가 됐습니다. 우울증의 신경 메커니즘이 밝혀지자 감정은 조절 가능한 변수로 바뀌었습니다. 신성은 가장 난해해 보이지만, 유전자 편집과 뇌-기계 인터페이스와 AI 증강이 결합되면 현재의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 즉 호모 데우스가 가능하다는 것이 하라리의 예측입니다.
이 프로젝트들이 공상과학 같아 보이지만, 책의 절반은 이 세 목표가 이미 어떻게 자원 배분과 정책 우선순위를 재편하고 있는지를 데이터로 보여 주는 데 할애됩니다. 2016년에 쓰인 이 예측 중 상당 부분이 2020년대 들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예측력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의 종말과 데이터이즘의 부상
하라리의 가장 도발적인 주장은 인본주의(humanism)가 끝나 가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지난 300년간 서구 세계를 지배해 온 인본주의는 "인간의 경험과 선택과 감정이 가치와 의미의 궁극적 원천"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민주주의, 자본주의, 인권 제도의 철학적 바탕이었습니다. 그러나 신경과학과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선택"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당신의 다음 클릭을 당신보다 먼저 예측하고, 당신의 구매 결정을 당신 자신보다 정확히 맞추고, 당신이 아직 느끼지 않은 감정을 심박수로 감지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자유의지에 기반한 선택"이라는 인본주의의 전제는 과학적으로 점점 의심스러워집니다. 하라리는 인본주의의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세계관이 이미 부상했다고 말합니다. 바로 데이터이즘(Dataism)입니다. 데이터이즘의 핵심 교리는 단순합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정보 흐름이며, 유기체는 알고리즘이고, 지식의 가치는 흐름의 효율로 측정된다. 이 세계관에서 인간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생성하고 처리하는 여러 알고리즘 중 하나일 뿐입니다.
무용 계급의 출현
자동화와 AI가 노동 시장을 재편하는 방식을 하라리는 "무용 계급(Useless Class)"이라는 단어로 정리합니다. 산업혁명기에 사라진 직업들은 새로운 직업으로 대체됐습니다. 방직공이 기계 기술자가 되었고, 마부가 자동차 정비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파도는 다릅니다. AI는 육체 노동뿐 아니라 인지 노동까지 대체하며, 새로 창출되는 직업은 매우 고급의 기술을 요구합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불필요해진 거대한 계층이 생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계층은 실업자가 아닙니다. 실업은 "다시 고용될 수 있는 상태"를 전제하지만, 무용 계급은 구조적으로 다시 경제에 진입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들을 위해 제공되는 기본소득, 가상 오락, 약물 기반 행복은 하라리의 표현으로는 "로마 시대의 빵과 서커스"의 디지털 버전입니다. 중요한 질문은 정치적 의미입니다. 경제적으로 불필요한 계층이 정치적으로 어떤 위치를 가지는가. 민주주의는 본래 "노동과 병역과 납세가 국가에 의미 있게 기여하는 시민"을 전제로 성립했습니다. 그 전제가 무너지면 정치 구조 자체가 다시 쓰입니다.
두 갈래의 새 카스트
무용 계급의 반대편에는 "업그레이드된 엘리트"가 있습니다. 유전자 편집으로 수명이 연장되고, 뇌-기계 인터페이스로 인지 능력이 증강되며, 알고리즘의 최상층에서 데이터 흐름을 설계하는 소수입니다. 하라리는 이것이 단순한 빈부 격차가 아니라 종(species) 차원의 분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과거의 불평등은 원리상 극복 가능했지만, 생물학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인간과 업그레이드되지 못한 인간 사이의 격차는 세대를 거치며 고정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카스트 제도가 기술을 통해 부활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입니다.
비트코인에 대한 메시지
감시 자본주의와 디지털 전체주의
이 책은 비트코인을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페이지마다 비트코인의 존재 이유를 외치고 있습니다. 데이터이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개인의 금융 활동은 가장 풍부한 데이터 원천 중 하나입니다. 언제, 어디서, 얼마에, 누구에게 돈이 흘렀는지는 그 사람의 신념, 취향, 관계, 건강, 정치적 성향까지 드러냅니다. 이 데이터를 국가나 거대 기업이 독점하는 시스템은 하라리가 경고하는 디지털 전체주의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중국의 사회신용 시스템은 이 시나리오의 가장 직접적 실현입니다.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는 이 방향을 글로벌 차원에서 확장할 수 있는 인프라입니다. 각국 정부가 이미 CBDC 설계 문서에서 "프로그램 가능한 화폐", "조건부 지출", "만료 가능한 잔고"를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라리의 렌즈로 보면 분명해집니다. 돈이 프로그래밍 가능해진다는 것은, 돈을 통해 행동이 프로그래밍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비트코인은 정확히 이 방향의 반대편에 있습니다. 중앙 기관이 프로그래밍할 수 없고, 만료시킬 수 없고, 조건을 붙일 수 없으며, 사용자의 동의 없이 추적할 수 없습니다. 하라리가 말한 디지털 전체주의에 대한 기술적 대안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비트코인을 언급하지 않고 쓴 가장 강력한 비트코인 논증"이라 할 만합니다.
에너지 대 데이터
하라리의 또 다른 통찰은 21세기의 권력이 "물리적 자원 통제에서 정보 흐름 통제로" 옮겨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글, 메타, 틱톡이 석유 재벌을 대체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비트코인의 작업증명이 이 흐름에 역행한다는 사실입니다. 비트코인의 보안은 정보 흐름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에서 나옵니다. 전기를 태워야만 블록을 만들 수 있고, 에너지는 데이터와 달리 복제하거나 조작하기 어렵습니다. 데이터이즘 시대에 물리적 실재에 닻을 내린 유일한 대규모 디지털 시스템이 비트코인이라는 관점이 이 책을 통해 더 선명해집니다.
이 책이 남기는 질문
하라리의 미래 예측에 동의하지 않을 여지는 많습니다. 그는 종종 가능성을 필연성처럼 기술하며, AI의 발전 속도와 방향에 대한 그의 전망은 모든 컴퓨터과학자가 공유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디스토피아가 단일 시나리오로 기술되어, 기술적 진보가 다른 정치 체제에서는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질문 자체는 피할 수 없습니다.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잘 알게 될 때 자유의지는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불필요한 계층에 대해 사회는 어떤 책임을 지는가. 소수가 종의 업그레이드를 독점할 때 정치적 평등은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와중에 개인이 지킬 수 있는 주권의 최후 보루는 무엇인가.
어떻게 읽을까
사피엔스를 먼저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사피엔스의 "허구가 대규모 협력을 가능케 한다"는 명제가 이 책의 "알고리즘이 인간의 허구적 자아를 해체한다"는 명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두 권을 묶어 읽으면 인류사의 과거-미래 곡선이 하나의 서사로 보입니다.
이 책을 덮은 뒤에는 개인주의, 자기 소유권, 비트코인 주권 문서를 읽기를 권합니다. 하라리의 진단이 현실이 되어 가는 속도에서, 비트코인이 제공하는 자기 주권이 왜 단순한 투자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인지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한 기술적 저항의 구체적 실천은 비트코인 사용 가이드 같은 실용서가 있습니다. 이 세 단계를 밟으면 진단-원리-실천의 삼각형이 완성됩니다.